오랫동안 나는 남성성이란 다른 남자들은 원래부터 이해하는 무언가라고 생각했다.
어떤 남자들은 태어날 때부터 싸우는 법, 차 고치는 법, 스포츠 얘기하는 법, 위스키 주문하는 법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릴 옆에 서 있어도 다음에 뭘 해야 하냐는 얼굴을 하지 않았다.
나는 아니었다.
나는 패션 일을 하고, 코드를 짠다. 디자인과 옷, 디테일, 아름다운 것에 관심이 많다. 어떤 남자들은 이런 걸 "남자답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이런 이유로 내가 덜 남자라고 느낀 적은 없다.
나중에야 알게 됐다. 사람들이 남성성이라고 부르는 것 대부분은 포장에 가깝다.
수염. 근육. 낮은 목소리. 비싼 시계. 트럭. 총. 스테이크. 시가. 사업체. 스포츠 기록을 국제 외교처럼 심각하게 얘기하는 능력.
그중 잘못된 건 없다.
쓸모 있는 것도 있고, 재밌는 것도 있고, 멋있어 보이는 것도 있다.
하지만 그 자체로 남자를 만들어주진 않는다.
소년도 수염은 난다.
겁쟁이도 무거운 걸 들 수 있다.
불안한 남자도 총은 살 수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도 팟캐스트는 시작할 수 있다.
진짜 질문은 이게 아니다.
"나는 남자답게 보이는가?"
더 나은 질문은 이거다.
"나는 내 발로 설 수 있는 사람이 됐는가?"
남자는 능력을 갖춘 소년이다
가장 단순하게 말하면 남성성은 "이 소년이 자라서 삶을 감당할 수 있는 어른이 됐다"는 공동의 이해다.
그냥 나이를 먹었다는 뜻이 아니다.
나이는 가만히 있어도 먹는다.
마흔다섯이 돼도 감정을 남이 관리해주길 바라고, 문제를 남이 해결해주길 바라고, 결정을 남이 내려주길 바라고, 자기 행동의 결과에서 남이 보호해주길 바라는 사람은 있다.
남자가 된다는 건 현실을 감당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 자기 자신을 돌본다
- 문제를 해결한다
- 약속을 지킨다
- 충동을 조절한다
- 결정을 내린다
- 중요한 사람과 것을 지킨다
- 망쳤을 때 책임진다
- 상황이 어려워져도 쓸모 있다
- 자기 무게를 전부 남에게 넘기지 않는다
이런 것들이 성숙함의 표시인 이유는 그 밑에 하나의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능력.
남자와 소년의 차이는 일이 계획대로 안 될 때 가장 잘 보인다.
당황하는가?
사라지는가?
남 탓부터 하는가?
어머니, 여자친구, 상사, 친구가 모든 걸 정리해줘야 움직일 수 있는가?
아니면 문제를 보고, 자기 몫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처리하는가?
도끼를 갖고 있느냐보다 이게 남성성에 훨씬 가깝다.
겉으로 보이는 남성성은 대부분 추정치다
진짜 능력은 바로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를 5초 보고 위기 때 침착할지, 약속을 지킬지, 아이를 잘 키울지, 거짓말이 더 쉬울 때 진실을 말할지, 가족이 무너질 때 버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깥의 신호를 본다.
- 힘 있는 몸
- 자신감
- 규율
- 돈
- 리더십
- 이성에게 인기 있는 정도
- 직업적 지위
- 주변의 존중
- 차분함
- 위험을 감수하는 태도
이런 것들은 실제 능력을 가리킬 수도 있다.
하지만 단서일 뿐이다.
증거는 아니다.
근육은 규율을 보여줄 수 있다.
그냥 운동을 좋아하고 시간이 많다는 뜻일 수도 있다.
성공한 사업은 지능, 용기, 끈기를 보여줄 수 있다.
부모님이 자본을 줬다는 뜻일 수도 있다.
차분한 성격은 감정을 잘 다룬다는 뜻일 수 있다.
아무것도 표현하는 게 무섭다는 뜻일 수도 있다.
외부 신호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예고편이지, 영화 전체는 아니다.
남성성에는 원래 연기가 섞여 있다
많은 남성성은 퍼포먼스다.
그렇다고 전부 가짜라는 뜻은 아니다.
모든 문화는 남자가 어떻게 입고, 걷고, 말하고, 경쟁하고, 농담하고, 싸우고, 여성을 대하고, 존중을 표현해야 하는지 나름의 규칙을 갖고 있다.
어떤 곳에서는 목소리가 크고, 공격적이고, 몸집이 큰 게 남자답다.
다른 곳에서는 조용하고, 절제되고, 경제적으로 책임지고, 가족에게 충실한 게 남자답다.
카우보이, 한국 회사원, 멕시코 가장, 영국 장교, 브루클린 래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남성성을 수행할 수 있다.
각각의 방식에는 글로 적히지 않은 규칙이 있다.
- 감정을 얼마나 보여줘도 되는가
- 언제 싸워야 하는가
- 어떤 옷이 지위를 나타내는가
- 나이 많은 남자에게 어떻게 말하는가
- 여자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는가
- 누군가 무시하면 어떻게 반응하는가
- 얼마나 아픈 걸 숨겨야 하는가
- 어떤 직업이 존중받는가
이 규칙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바뀐다.
우리가 자연스러운 남성 행동이라고 부르는 것 상당수는 실제로 배운 행동이다.
소년은 남자를 본다. 남자도 다른 남자를 본다.
아버지, 형, 배우, 운동선수, 군인, 래퍼, 종교 지도자, 그 세계에서 존중받는 사람을 따라 한다.
그리고 역할을 잘 수행하려고 한다.
그 퍼포먼스 밑에 진짜가 있을 때도 있다.
옷만 있을 때도 있다.
인터넷식 '남자 되는 법'
인터넷에 남자다워지는 법을 물으면 대개 이런 답을 듣는다.
- 수염을 길러라
- 무거운 걸 들어라
- 사업을 시작해라
- 싸우는 법을 배워라
- 사냥해라
- 낚시해라
- 총을 사라
- 수동 변속기를 운전해라
- 생존 기술을 익혀라
- 고기를 구워라
- 위스키를 마셔라
- 더 많은 여자와 자라
- 감정을 보이지 마라
-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라
다시 말하지만 대부분 나쁜 건 아니다.
운동은 좋다.
자기를 지킬 줄 아는 건 유용하다.
사업 시작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실용 기술도 좋다.
구운 고기는 맛있다.
하지만 남자처럼 보이는 행동과 남자가 되는 건 같은 게 아니다.
동작은 외울 수 있다. 그 아래 성격은 없을 수 있다.
독이 없는 동물이 위험한 동물의 색을 흉내 내는 것과 비슷하다. 멀리서는 그럴듯하지만 가까이 가면 별게 없다.
일찍 일어나고, 찬물 샤워하고, 시가를 피우고, 규율에 관한 문구를 올려도 여자친구에게 사과하지 못하는 남자는 있다.
데드리프트 220kg을 하면서 비판 한마디에 무너지는 남자도 있다.
리더십을 하루 종일 말하면서 부하 직원 모두를 쓰레기처럼 대하는 남자도 있다.
총을 여섯 자루 갖고도 아버지를 실망시키는 게 무서운 남자도 있다.
도구가 남자다워도 들고 있는 사람이 약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아시안 아메리칸 버전
아시안 아메리칸 남자도 자기만의 남성성 퍼포먼스가 있다.
많은 집에서 좋은 남자가 된다는 건 먼저 좋은 아들이 된다는 뜻이었다.
- 공부를 잘한다
- 괜찮은 직업을 얻는다
-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 가족을 돕는다
- 감정을 통제한다
- 말대꾸하지 않는다
- 예의를 지킨다
- 돈을 번다
- 사람들 앞에서 망신시키지 않는다
- 원하는 것보다 의무를 먼저 둔다
가치 있는 게 많다.
규율은 중요하다. 가족도 중요하다. 자기 통제와 신뢰성도 중요하다.
하지만 좋은 아들과 성숙한 남자는 늘 같은 사람이 아니다.
좋은 아들은 따르는 법을 안다.
성숙한 남자는 따라선 안 될 때를 안다.
좋은 아들은 부모님의 승인을 원한다.
성숙한 남자는 부모님을 실망시킬 수 있고, 그래도 사랑할 수 있다.
좋은 아들은 깔린 길을 간다.
성숙한 남자는 그 길이 정말 자기 길인지 묻는다.
많은 한국계 미국 남자는 이력서로는 성공했지만 자기가 무엇을 믿는지 한 번도 제대로 결정하지 않았다.
하라는 전공을 한다.
안전한 직업을 고른다.
가족이 받아들일 사람을 만난다.
갈등을 피한다.
어른이 명백히 틀려도 침묵한다.
그리고 그걸 책임감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책임감일 때도 있다.
그냥 무서울 때도 있다.
그게 불편한 부분이다.
필요한 건 두 가지다
내가 보기엔 남자가 되는 건 두 가지로 줄어든다.
- 척추
- 배짱
물론 비유다.
신체 부위 얘기가 아니다. 실제 신체 조건과 상관없이 남자는 남자다.
척추가 있다는 건 내가 무엇 위에 서 있는지 안다는 뜻이다.
배짱이 있다는 건 거기 서는 대가를 감수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게 전부다.
나머지는 대부분 스타일이다.
먼저 척추가 있어야 한다
척추가 있다는 건 내가 진실이라고 믿는 걸 위해 설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전에 진짜로 무엇을 믿는지 알아야 한다.
생각보다 어렵다.
내 믿음이라고 생각하는 것 상당수는 여기서 왔다.
- 부모
- 종교
- 학교
- 친구
- 인터넷
- 정치
- 문화
- 인정받고 싶었던 사람
- 무서웠던 사람
- 지금 나를 받아주는 집단
어떤 생각을 충분히 반복해서 이제 익숙하게 들리는 걸 내 신념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다.
내 목소리와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분리하는 데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자기에게 물어봐라.
- 가족에 대해 나는 뭘 믿는가?
- 일에 대해 뭘 믿는가?
- 부모님께 내가 빚진 건 무엇인가?
- 부모님은 내게 무엇을 빚졌는가?
- 어떤 관계를 원하는가?
- 충성은 나에게 무슨 뜻인가?
- 돈을 아무리 줘도 하지 않을 건 무엇인가?
- 친구를 잃어도 지키고 싶은 건 무엇인가?
- 어떤 남자를 존경하는가?
- 어떤 행동을 하면 나 자신을 존중할 수 없게 되는가?
- 내 삶에서 진짜 내가 고른 건 무엇인가?
- 무서워서 그냥 받아들인 건 무엇인가?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질문을 피한다.
불편하니까.
완성된 정체성을 복사하는 게 훨씬 쉽다.
정치 집단, 종교, 인터넷 남성성 커뮤니티, 직업 문화, 친구 그룹에 들어가면 완성된 인격을 받을 수 있다.
이게 네 믿음이다.
이게 네 적이다.
너 같은 남자는 이렇게 입어야 한다.
이렇게 말해야 한다.
이 감정은 괜찮고, 저 감정은 안 된다.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 쉽다.
하지만 그건 척추가 아니다.
빌린 뼈대다.
서는 순간 그림자가 생긴다
무언가를 위해 서는 순간 눈에 보이는 사람이 된다.
세상 안에서 분명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면 사람들이 너에게 반대할 수 있다.
비판할 수 있다.
오해할 수 있다.
비웃을 수 있다.
거절할 수 있다.
더는 너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많은 남자가 계속 애매하게 산다.
무엇을 믿는지 분명히 말하지 않는다. 방 분위기를 먼저 보고, 누가 강한지 본 다음 그에 맞는 의견을 고른다.
다루기 쉬운 사람이다.
거기엔 본인이 거의 없다.
서면 모양이 생긴다.
모양이 있는 건 그림자를 만든다.
분명히 설수록 네가 어디 있는지 잘 보인다.
존중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공격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게 포함된 일이다.
어떤 반대에서도 완전히 안전한 채로 진짜 개인이 될 수는 없다.
척추 없는 남자
척추 없는 남자가 처음부터 약해 보이는 건 아니다.
성공하고, 매력 있고, 근육 있고, 재밌고, 인기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압박이 오면 드러난다.
듣는 사람에 따라 믿음을 바꾼다.
방에서 가장 강한 사람에게 동의한다.
누군가 자기 파트너를 무시해도 갈등을 피하려고 침묵한다.
부모님이 인생을 통제해도 '싫다'고 말하는 불편함을 피하려고 따른다.
친구가 명백히 틀려도 말하지 않는다.
싫은 대우를 받고 뒤에서만 불평한다.
모두를 만족시키려고 사람마다 다른 말을 한다.
본인은 그걸 털털함이라고 부를 수 있다.
대부분은 두려움이다.
척추 없는 삶은 겉으로 평화로울 수 있다. 공개적인 갈등을 피하니까.
하지만 갈등은 사라지지 않는다.
안으로 들어간다.
원망하고, 쓰고, 혼란스러워진다. 어떤 결정이 내 것이었는지 모르게 된다.
마지막에 돌아보면 모두에게 말이 되지만 나한테만 맞지 않는 삶을 만들어놓았다.
다음은 배짱이다
무엇을 믿는지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대로 행동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게 배짱이다.
분명한 한 사람으로 사는 위험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잃을 수 있는 건 많다.
- 승인
- 돈
- 지위
- 직장
- 관계
- 친구
- 편안함
- 가족의 지원
- 평판
- 사람들이 갖고 있던 너에 대한 이미지
떠오르는 모든 의견에 인생을 걸라는 뜻은 아니다.
그건 용기가 아니라 무모하고 피곤한 짓이다.
정말 중요한 일에서는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 누구와 결혼할지 부모님께 말한다
- 모두가 멋진 커리어라고 하는데 내가 싫어하는 일을 그만둔다
- 내가 틀렸다고 인정한다
-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을 변호한다
-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 붙은 돈을 거절한다
- 겉으로 좋아 보이는 관계를 끝낸다
- 침묵하면 안전할 때 진실을 말한다
- 나이 많거나 힘 있는 사람에게 경계를 세운다
- 들키기 전에 실수를 인정한다
-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삶을 선택한다
많은 남자는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안다.
그냥 언젠가 그 일이 안 아프게 되길 기다린다.
그날은 안 온다.
용기는 나쁜 일이 안 생길 거라고 확신한 뒤 움직이는 게 아니다.
나쁜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 움직이는 것이다.
척추는 있는데 배짱이 없는 경우
강한 믿음이 있어도 평생 숨길 수 있다.
내가 누군지 안다.
뭘 원하는지도 안다.
뭔가 잘못됐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행동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불평하고 공개적으로는 협조한다.
메모 앱에는 용감한 문장을 쓴다.
언젠가 할 연설을 상상한다.
아무도 화내지 않고, 아무도 실망하지 않고, 아무것도 잃지 않을 완벽한 순간을 기다린다.
그 순간은 없다.
용기 없는 척추는 개인적인 자세일 뿐이다.
실제로 서지 않으니 아무도 볼 수 없다.
비밀리에 무엇을 믿느냐로 남자가 되는 게 아니다.
무엇을 실제로 살아내느냐로 남자가 된다.
배짱은 있는데 척추가 없는 경우
반대도 문제다.
공격성은 많은데 원칙은 없는 남자가 있다.
싸우고, 따지고, 위험을 감수하고, 상황을 망친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는 모른다.
용기와 무모함을 헷갈린다.
사람을 모욕하고, 갈등을 만들고, 관계를 부수고, 규칙을 깨면서 누구도 자기를 통제할 수 없다는 걸 증명하려 한다.
그건 힘이 아니다.
큰 몸으로 더 큰 떼를 쓰는 아이일 뿐이다.
원칙 없는 용기는 이렇게 변한다.
- 자아도취
- 폭력
- 어리석음
- 의미 없는 반항
- 자기파괴
- 힘을 느끼려고 남을 해치는 일
남자는 둘 다 필요하다.
척추는 용기에 방향을 준다.
용기는 척추를 머릿속 밖으로 꺼낸다.
능력은 여전히 중요하다
원칙이 있다고 무능해도 되는 건 아니다.
명예를 끝없이 말하면서 자기 삶 하나 관리하지 못한다면 여전히 빠진 게 있다.
남성성은 능력으로 이어져야 한다.
모든 남자가 같은 기술을 가질 필요는 없다.
엔진 분해, 사슴 사냥, 빗속에서 불 피우기, 주차장에서 다섯 명과 싸우기. 다 할 필요 없다.
하지만 네가 실제로 사는 삶에서는 능력 있어야 한다.
최소한 이런 건 배워라.
- 돈을 관리한다
- 몸을 돌본다
- 몇 가지 요리를 한다
- 집을 기본적으로 정리한다
- 흔한 비상 상황을 처리한다
- 분명하게 소통한다
- 분노를 조절한다
- 사과한다
- 결정한다
- 약속을 지킨다
- 도움을 요청해도 완전히 무력해지지 않는다
- 나를 의지하는 사람을 돕는다
- 문제가 생기면 침착해진다
능력이 있다는 건 네가 있으면 상황이 조금 더 다루기 쉬워진다는 뜻이다.
무언가 망가졌을 때 주변 사람들이 네 공황을 관리하느라 절반의 힘을 쓰지 않아도 된다.
네가 실수했을 때 사람들이 진실을 입에서 끌어내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 도움이 필요할 때 귀찮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게 진짜 믿을 만한 사람이다.
규율은 진짜지만 의상이 아니다
규율은 자기 자신을 다스릴 수 있다는 뜻이기에 남성적이다.
하지만 규율도 쉽게 퍼포먼스가 된다.
알람 시계를 올린다.
찬물 샤워를 올린다.
운동을 올린다.
밀프렙을 올린다.
어두운 방과 동기부여 문구를 올린다.
이런 규율은 잘 안 올린다.
- 같은 어려운 대화를 네 번째 하면서도 화내지 않는다
- 아무도 모를 상황에서도 충실한다
- 성공해 보이게 해줄 물건 대신 돈을 저축한다
- 내 분노가 사람을 해쳐서 상담을 받는다
- 관계가 어색해도 아버지에게 전화한다
- 시작한 사업이 안 된다는 걸 인정한다
진짜 규율은 대개 지루하고 사적이다.
강해 보이는 게 아니다.
기분이 전혀 협조하지 않을 때도 해야 할 걸 하는 능력이다.
감정 조절은 감정 죽이기가 아니다
많은 남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게 남자다운 거라고 배운다.
울지 마라.
무섭다고 하지 마라.
안심시켜달라고 하지 마라.
상처받았다고 하지 마라.
혼란스럽다는 걸 보이지 마라.
이건 감정적 강함이 아니다.
감정 변비다.
통제는 감정이 없는 게 아니다.
감정이 자동으로 행동을 통제하지 않는 것이다.
화가 나도 잔인해지지 않는다.
무서워도 도망치지 않는다.
슬퍼도 모두에게 구해달라고 하지 않는다.
거절당해도 증오로 바꾸지 않는다.
울어도 인간으로서 무너지지 않는다.
자기 감정을 이해하는 남자는 감정이 없는 척하는 남자보다 훨씬 통제하기 어렵다.
자기를 알기를 거부하는 남자는 결국 외면한 것에 지배당한다.
존중은 요구할 수 없다
존중에 집착하는 남자는 많다.
여자에게 존중받고 싶다.
다른 남자에게 존중받고 싶다.
직원, 아이, 파트너, 낯선 사람에게 존중을 요구한다.
하지만 존중은 주차 딱지가 아니다.
복종은 강요할 수 있다.
두려움도 만들 수 있다.
무례를 벌줄 수도 있다.
진짜 존중은 강제할 수 없다.
존중은 사람들이 네 행동을 보면서 자란다.
- 약속을 지킨다
- 진실을 말한다
- 압박 속에서도 안정적이다
- 책임을 진다
- 약한 사람을 위해 선다
- 인정받으려고 자기를 배신하지 않는다
- 필요한 게 없는 사람도 잘 대한다
- 결과를 받아들이고 빠져나오게 해달라고 매달리지 않는다
- 충성하지만 맹목적이지 않다
- 사실이 바뀌면 생각도 바꾼다
사람들은 무언가에 분명히 서 있고, 대가가 커져도 바로 무너지지 않는 사람을 존중한다.
모두가 좋아한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가 존중하는 남자는 모두에게 사랑받지 않을 수 있다.
그냥 분명하다.
아무것도 신경 안 쓰는 게 목표는 아니다
진짜 남자다운 남자는 누가 뭐라고 생각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이 인기 있다.
사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평판, 사랑, 소속, 인정은 중요하다.
완전히 무관심해지는 게 목표는 아니다.
인정이 원칙을 덮지 않게 하는 게 목표다.
부모님이 실망할 걸 신경 쓰면서도 내 결정을 할 수 있다.
친구가 반대할 걸 신경 쓰면서도 진실을 말할 수 있다.
여자가 떠날 수 있다는 걸 신경 쓰면서도 경계를 지킬 수 있다.
깊이 신경 쓰되 복종하지 않을 수 있다.
아무도 필요 없는 척하는 것보다 그게 더 강한 독립이다.
남성성은 체크리스트가 아니다
이런 건 필요하지 않다.
- 수염
- 트럭
- 스포츠를 좋아하는 것
- 위스키
- 사냥
- 싸움
- 창업
- 많은 여자와 자는 것
- 오두막을 짓는 능력
- 스킨케어를 싫어하는 것
- 아름다운 걸 피하는 것
- 일부러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것
- 감정적으로 부재하는 것
좋아하면 해라. 유용하면 배워라.
의상이 안의 사람을 만든다고 생각하진 마라.
나는 패션 일을 하고 코드를 써도 남성적일 수 있다.
간호사도.
무용수도.
전업 아빠도.
조용한 남자도.
다정한 남자도.
우는 남자도.
스포츠에 관심 없는 남자도.
활동이 결정하는 게 아니다.
성격과 선택이 결정한다.
간단한 테스트
어떤 게 남성적인지 헷갈리면 이렇게 물어봐라.
능력이 필요한가?
나를 더 유능하고, 쓸모 있고, 규율 있고, 믿을 만하게 만드는가?
척추가 필요한가?
내 원칙에서 행동하는가, 아니면 인정받는 모양을 복사하는가?
용기가 필요한가?
선택의 대가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책임이 늘어나는가?
내 무게를 내가 드는가, 남에게 넘기는가?
더 솔직해지는가?
더 분명해지는가, 아니면 새로운 의상을 만드는가?
겉으로 남자답게 보이는지보다 훨씬 쓸모 있는 질문이다.
내가 되고 싶은 남자
멀리서 보면 대단해 보이는데 가까이 가면 무너지는 남자가 되고 싶진 않다.
내 삶의 모든 부분이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남성성에 맞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중요하게 보는 건 이거다.
- 대가가 있어도 진실을 말하는가
-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가
- 틀렸을 때 인정하는가
- 어려운 결정을 하는가
- 위기 속에서 쓸모 있는가
- 가족에게 맞서면서도 버리지 않는가
- 자기를 조절하면서 자기를 눌러 죽이지 않는가
- 실제로 선택한 가치대로 사는가
- 박수 없이도 책임지는가
늘 완벽하게 할 수는 없다.
아무도 못 한다.
남성성은 한 번 열면 끝나는 최종 레벨이 아니다.
선택할 때마다 계속 확인되는 것이다.
삶이 물을 때마다,
"진짜 그렇게 믿어?"
행동이 대답한다.
결론
남자가 되는 건 복잡하지 않다.
어렵지만 복잡하지 않다.
내가 누군지 알아라.
무엇을 믿는지 알아라.
내 삶을 감당할 능력을 길러라.
진실이라고 믿는 것을 위해 서라.
거기 서는 위험을 받아들여라.
수염은 필요 없다.
트럭도 필요 없다.
모든 싸움에서 이길 필요도, 모든 여자를 유혹할 필요도, 가장 많은 돈을 벌 필요도, 방에서 가장 큰 목소리가 될 필요도 없다.
척추가 필요하다.
배짱이 필요하다.
그 둘을 쓸모 있는 것으로 바꿀 능력이 필요하다.
나머지는 스타일이다.
